정부 “국내업계 이익구조 달라…검토 안 해”
난방비 폭등 주원인은 LNG…석유제품 영향 미미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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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한국 김정우 기자] 지난해 호실적을 기록한 정유업계에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에 정부와 전문가 등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 업계 구조를 감안할 때 시장경제 논리에 부합하지 않고 과세의 일관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5일 국회에서 연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정부에서 전기, 가스요금을 대폭 올리는 바람에 취약계층의 고통이 매우 심각하다”며 “정유사와 에너지 기업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국민이 입는 고통을 상쇄해 줬으면 하는 만큼 차제에 다른 나라들이 다 시행하고 있는 횡재세도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도입하는 것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횡재세는 정부의 정책지원 등을 바탕으로 막대한 수익을 내는 업종에 초과이윤세를 부과하는 제도를 뜻한다. 국내 정유업계가 지난해 상반기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면서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횡재세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경제산업연구원 부원장인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는 지난 26일 CBS 라디오 프로그램 대담에서 횡재세 관련 질문에 “경제 정책과 제도는 환경, 공기와 같아서 급격하게 바꾸는 것을 가장 크게 지양해야 한다”며 “어느 순간 이득이 많았다고 세율을 올려버리면 적자를 보는 기간에는 무엇으로 버티게 되는 것인지 등 의구심이 분명히 있다”고 답했다.

박 교수는 또 “이익을 본 건 지난해고 지금은 또 다른 상황인데 그것을 현 시점에서 횡재세로 걷자는 것은 조금 시차가 있다”며 “만일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서 정유사나 공공기업이 크게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그때그때 세율을 바꿀 것이냐의 문제도 있어 앞뒤가 안 맞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횡재세 도입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6일 “(횡재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유럽 등은 그들이 유전을 개발하고 유전을 통해 채유하고 정제해 수익을 만드는 구조지만 우리는 원유를 수입·정제해 판매하는 구조여서 기본적으로 이익 구조가 다르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이어 “특정 기업이 특정 시기에 이익이 난다고 해서 횡재세 형태로 접근하기보다는 법으로 정한 법인세로 세금을 납부하는 게 건강한 형태”라고 부연했다.

해외에서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석유·천연가스 회사를 상대로 초과이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일부에서 횡재세 도입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내 기업과 사업 구조가 다른 만큼 이를 그대로 들여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해외 기업들은 원유를 직접 시추하고 되파는 업스트림 구조로 사실상 채굴비용을 제외하고 큰 이윤을 남기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원유를 수입‧가공해 되파는 다운스트림 구조인 국내 정유사들은 원가 상승분을 부담해야 하는 차이가 있다.

특히 이 같은 구조에서 국내 정유사들은 유가가 상승할 때 정제마진이 좋아지면서 이익을 내고 다시 유가가 하락할 때 손실을 보게 된다. 이 때 손해에 대한 보전은 없이 이익에 대해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것은 시장경제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횡재에 도입 주장의 배경에는 지난해 호실적을 바탕으로 국내 정유사들이 높은 수준의 성과급을 책정하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 당시 정유사들은 성과금 책정을 포기하는 등 경영 상황에 따른 유동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재명 대표가 주장하는 난방비 폭등과 정유업의 연관성도 떨어진다. 정유업은 해외에서 원유를 전량 수입해 석유제품으로 정제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업종인데 난방비는 한국가스공사가 90%를 들여오는 액화천연가스(LNG)와 밀접하다.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원재료 비중 가운데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은 81.6%, 석유 제품인 저유황유(LSFO) 비중은 4.2%에 불과하다.

한편,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업체들의 석유제품 수출액은 570억3700만달러로 집계됐다. 2012년(533억달러) 이후 10년 만에 최대 수출액을 경신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원유수입액은 954억5000만달러였는데 석유제품 수출로 이 가운데 약 60%를 회수, 국가무역수지 개선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유업계는 2012년부터 원유도입액의 절반 이상을 수출로 회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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