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화평 기자] 석유화학업체들이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흐름에 발맞춰 폐플라스틱 재활용 방안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친환경 기업으로 변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평가다.

석유화학산업은 연간 약 7100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국내 제조업 중에서는 철강(연간 1억1,700만톤) 다음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다. 원료로 사용하는 납사의 열분해 과정에서 나오는 메탄 등 부생가스가 나오는데 이를 연료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대량 발생한다. 더불어 석유로 만드는 플라스틱은 대부분 한 번 쓰고 버려져 환경파괴 주범으로 꼽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월 ‘석유화학 탄소제로위원회’가 출범했다. 여기에는 SK지오센트릭, LG화학(051910), 롯데케미칼(01170), 한화토탈 등이 참여하고 있다. 위원회 출범 이후  저마다 폐플라스틱 재활용 비전을 제시하며 친환경 기업으로 도약을 꾀하는 모습이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이 지난달 31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  ‘브랜드 뉴 데이’에서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SK지오센트릭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이 지난달 31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 ‘브랜드 뉴 데이’에서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SK지오센트릭

SK지오센트릭의 각오

SK종합화학은 제2창업에 준하는 새 출발을 선언, ‘SK지오센트릭’으로 사명을 변경해 지난 1일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은 지구와 토양을 뜻하는 ‘지오(geo)’와 중심을 뜻하는 ‘센트릭(centric)’을 조합한 것이다.

2011년 SK이노베이션(096770)의 석유화학 부문에서 물적 분할해 탄생한 지 10년 만의 사명 변경이다. 이로써 1972년 한국 최초로 나프타 분해설비를 가동하며 석유화학산업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SK종합화학의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은 “한국 최초 석유화학회사에서 세계 최고의 폐플라스틱 재활용에 기반한 도시유전 기업으로 탈바꿈해 플라스틱 순환 경제와 친환경 확산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새로운 사명을 채택했다”며 “폐플라스틱 문제는 이를 가장 잘 아는 화학기업이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SK지오센트릭은 세계 최대 도시유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1차 목표로 국내 플라스틱 생산량에 해당하는 연간 90만톤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설비 능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친환경 소재 확대 등 2025년까지 국내외에 약 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2027년까지는 SK지오센트릭의 글로벌 플라스틱 생산량 100%에 해당하는 연 250만톤을 직간접적으로 재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는 해마다 전 세계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폐플라스틱의 약 2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나 사장은 “핵심 방향은 지구를 중심에 둔 친환경 혁신”이라며 “친환경·재활용 영역에서 기존 사업보다 많은 이익을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토탈도 한마음

LG화학도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LG화학은 최근 CEO기자간담회에서 2025년까지 바이오 소재, 재활용, 신재생에너지 산업 소재 등 친환경 소재 중심의 지속가능한 사업에 3조원을 투자해 미래 성장축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에는 친환경 프리미엄 통합 브랜드 ‘LETZero(렛제로)’를 출범, 재활용·바이오·썩는 플라스틱 등 친환경 시장을 적극 공략하기로 했다. 렛제로는 ‘환경에 해로움을 제로, 탄소배출 순증가를 제로로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LG화학은 국내 스타트업 이너보틀과 손잡고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를 100% 재활용하는 ‘플라스틱 에코 플랫폼’도 구축했다. 또 2028년까지 총 2조6,000억원을 투자해 충남 대산공장에 생분해성 플라스틱과 태양광 필름용 ‘POE’ 등을 생산하는 10개 공장을 신설한다. POE는 고무와 플라스틱의 성질을 모두 가진 고부가 합성수지로, 태양광 필름과 자동차용 범퍼 소재 등에 활용된다.

LG화학 충남 대산공장 전경. 출처=LG화학
LG화학 충남 대산공장 전경. 출처=LG화학

롯데케미칼은 폐플라스틱 재활용 소재로 포장재를 자체 개발해 올해 7월부터 자사 제품 포장에 적용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고객사로부터 PE(폴리에틸렌) 소재 폐포장재를 수거해 재활용 공정을 거쳐 PCR-PE(재생 폴리에틸렌)을 만들었다. 재생 폴리에틸렌은 약 30% 비중으로 친환경 포장재 제조에 투입된다.

황진구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대표는 “PCR-PE 포장백 도입으로 연간 300톤 이상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롯데케미칼은 생산·판매·재활용까지 전 과정을 아우를 수 있는 플라스틱 선순환 구축에 앞장서겠다”이라고 말했다.

한화토탈은 한화솔루션(009830)과 함께 폐플라스틱 친환경 처리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고온에서 분해한 열분해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분자 구조를 변화시켜 납사를 생산하는 기술(PTC) 개발이 목표다. 폐플라스틱에서 생산한 나프타를 납사분해설비(NCC)를 통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플라스틱 기초 원료로 다시 생산하면 플라스틱의 반복 사용이 가능한 순환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정부 제도적 지원 필요  

석유화학업계의 이 같은 시도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라 아직 갈 길이 멀다. 업계에서는 정부 지원책이 없으면 탄소중립 목표는 현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탄소중립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지원책과 재정사업을 통해 업계 참여를 이끌어내 폐플라스틱 열분해 처리 비중을 현행 0.1%에서 2030년 1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폐플라스틱 열분해를 통해 석유화학기업이 원유를 대체하고 납사·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폐기물관리법’ 하위법령을 올해 안으로 개정할 방침이다. 기업들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석유제품 원료로 활용할 경우에는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고려해 탄소배출권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지침도 개정한다.

환경부는 2022년도 환경부 소관 예산·기금안의 총 지출을 11조7,900억원으로 편성해 3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번 예산안은 전년도 10조1,665억원 대비 6,102억원(6%) 증액된 10조7,767억원이다. 기금안은 전년도 1조49억원 대비 64억원(0.8%) 증액된 1조133억원이다.

이 가운데 내년에 신규로 폐플라스틱 활용 원료·연료화 기술개발에 52억원, 미래 발생 폐자원 재활용 촉진 기술개발에 41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