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에서 수소로..'기후 빌런' 포스코의 3가지 난관

박종오 2021. 10. 2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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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2050년 탄소중립 위한 과제들
기술 개발, 청정수소·전기 확보에 상품성까지 갖춰야
포스코 광양제철소. 포스코 누리집 캡쳐

환경 단체들은 국내 최대 철강 기업 포스코를 ‘기후 빌런(악당)’이라고 부른다. 탄소 배출 때문이다.

철의 원재료인 철광석은 자연 상태에서 산소(원소 기호 ‘O’)를 품고 녹이 슨다. 이 산소를 떼어내야 철 만드는 데 쓰는 쇳물(조강)이 나온다. 지금은 산소를 분리하는 도구로 탄소(C) 덩어리인 석탄(유연탄)을 쓴다. 용광로에 철광석과 석탄을 함께 넣고 뜨거운 열로 녹여서 쇳물을 만든다. 철 생산 과정에서 환경을 해치는 온실가스, 이산화탄소(CO 2)가 대거 나오는 이유다.

자동차, 선박, 아파트 등 주요 제조품에 철을 공급하며 한국 산업의 기둥 역할을 해온 포스코의 또 다른 얼굴이 국내 최대 탄소 배출 기업인 까닭이다. 포스코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7천∼8천만t가량이다. 국내 전체 배출량의 10%를 웃돈다. 쇳물 1t을 생산할 때 거의 2배에 이르는 탄소가 나온다.

발등에 떨어진 불인 기후 위기 앞에 포스코가 내놓은 해법은 ‘수소’ 올인이다.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는 도구로 석탄 대신 수소(H)를 사용해 온실가스가 아니라 깨끗한 물(H 2O)을 배출하겠다는 거다. 이른바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이다. 이달 초 포스코가 수소 기술을 논의하는 철강업계 국제 포럼을 연 건 더는 피할 데가 없어서다. 지난 18일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포스코를 비롯한 국내 철강 회사가 오는 2050년까지 제철 공정에서 100% 수소만 사용해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95% 줄여야 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2050년 탄소 중립(이산화탄소 순 배출량 0)을 이루기 위해서다.

수소 환원 제철 기술 개발될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가장 먼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정말 ‘100%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할 수 있느냐다. 포스코가 수소 제철 연구를 시작한 건 2000년대부터다. 10년 넘게 지났지만 기술 개발과 상용화 목표 시점은 2050년으로 변함이 없다. 이명박 정부가 이 시기를 2030년으로 앞당기겠다고 했으나 공수표가 됐다.

포스코가 내세우는 건 경험이다. 이 회사가 2007년 개발한 ‘파이넥스’ 기술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하는 도구로 수소를 25% 정도 쓴다. 초기 단계의 수소 제철 공법인 셈이다. 이 기술을 고도화해 수소 사용 비율을 높이겠다는 게 포스코 전략이다. 유럽 경쟁사가 개발 중인 방식은 비싼 철광석 알갱이(펠릿)를 써야 하고 열 손실이 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회사 쪽은 설명한다.

그러나 포스코에 앞서 깨끗한 철을 만든 곳이 있다. 스웨덴 철강사 사브는 최근 석탄 대신 수소를 100% 사용한 깨끗한 철 시험 생산에 이미 성공했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브가 생산한 강철은 10t 정도로 규모가 작아서 아직 의미 있는 수준이 아니다”며 “우리도 몇 가지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난제가 있지만 수소만 충분히 확보하면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포스코 쪽은 “현재 파이넥스 기술을 이용해 매년 250만t 규모의 철을 생산 중”이라며 “기존 경험에 몇 가지 핵심 기술을 추가로 결합해 신속하게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포스코는 오는 2028년 연 100만t 규모의 시험 생산에 착수할 계획이다. ‘시험 생산’도 최소 7~8년은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깨끗한 수소와 전기 공급은?

다음 난관은 어디서 제철에 쓸 수소를 구하느냐다. 특히 생산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 없는 청정 철을 생산하려면 수소도 깨끗하게 만든 것이어야 한다.

시중에서 얻을 수 있는 수소는 세 종류다. 그린 수소, 블루 수소, 그레이 수소 순으로 깨끗하다. 현재 세계에서 생산하는 수소 총 1억1700만t(2018년 기준) 중 대부분이 천연가스·석탄에서 수소를 직접 추출하거나 석유 정제 과정 등에서 딸려나오는 가스를 수소로 전환한 그레이 수소다. 화석 연료인 가스를 쓰는 만큼 탄소도 많이 배출한다. 수소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를 별도로 잡아 모은 블루 수소, 태양광·풍력 등 재생 에너지로 만든 전기로 물을 분해해 얻는 그린 수소 등 깨끗한 수소 비율은 1%에도 못 미친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수소의 태반도 정유·화학·철강 공장에서 찌꺼기로 나오는 그레이 수소다.

포스코는 30년 내로 수소 제철 등에 필요한 그린 수소 연간 500만t 공급 체계를 갖추겠다고 공언한다. 이는 정부가 2050년 목표로 내건 국내 전체 청정 수소(그린·블루 수소) 생산량과 맞먹는 규모다. 포스코가 계획을 지키려면 대규모 수소를 재생 에너지가 풍부한 오스트레일리아·중동 등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불확실성이 크다.

포스코만 잘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수소 제철 전환에 따라 깨끗한 전기도 함께 필요해져서다. 지금은 용광로에서 나오는 가스를 이용해 제철소가 필요한 전력의 60% 이상을 자체 조달하지만, 수소 사용 땐 이런 발전용 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이에 포스코가 근본적으로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면 청정 수소뿐 아니라 깨끗한 전기를 외부에서 대량 공급받아야 한다. 회사 쪽도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이 개발된다고 해도 어떻게 그린 수소와 그린 전력(청정 전력)을 경제적으로 필요한 만큼 확보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넘어서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닌 셈이다.

수소로 만든 철 사줄까?

마지막 고비는 청정 철의 ‘상품성’이다. 수소 제철 기술이 아직 개발 단계인 만큼 최종 생산 제품의 질도 미지수다. 더구나 탄소중립위원회가 오는 2030년까지 설비를 신설 또는 증설할 땐 기존 용광로 대신 전기로를 써야 한다고 주문하며 새로운 숙제를 안겼다. 전기로는 고철(철 스크랩)을 녹여서 철을 만드는 만큼 질이 떨어진다.

포스코 쪽은 “전기로 가동 시에도 고급 강철을 생산하는 기술 개발을 함께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청정 수소·전기를 이용하며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소재·산업환경실장은 “외국의 경우 수소 환원 제철뿐 아니라 전기로 비중 확대, 생산량 감축 등 탄소 중립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만 다른 옵션 없이 수소 제철 기술에 올인하는 게 불안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연구자는 “기업에 단시간에 탄소 저감 계획을 내놓으라고 하니 (포스코는) 별다른 고려 없이 기존에 있던 방안을 전달하고 정부도 이를 얼씨구나 하고 대책에 넣은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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