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수소 전략 르포] ①천연가스 대신할 英 수소에너지의 3대 강점

에든버러·셰필드=정미하 기자 2023. 10.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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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까지 저탄소 수소 10GW 생산... 일자리 1만개 창출”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으로 높아진 ‘에너지 안보’
’바람 많은 섬나라’ 장점 살려 그린 수소 생산
천연가스망 이용하고, 안전한 소금 동굴에 저장

지난달 18일(이하 현지 시각),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 위치한 건축 엔지니어링 기업 애럽(Arup) 본사로 가는 길. 숙소가 있는 에든버러 구시가지에서 애럽 본사가 있는 신시가지로 이동하기 위해 찾은 에든버러 역사 안에는 ‘넷제로(Net Zero·탄소중립)’ 광고 게시판이 늘어서 있었다.

철로 옆에 이어진 200m 길이의 통행로에는 초겨울 마냥 쌀쌀한 날씨에 어깨를 잔뜩 움츠린 사람들이 게시판을 힐끗 쳐다보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게시판에는 ‘넷제로 영웅인 전기 열차가 연간 1000톤(t) 이상의 탄소 배출을 줄였다’, ‘우리가 줄인 전체 탄소 배출량은 3만톤(t)으로, 코끼리 5000마리와 맞먹는다’ 등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지난달 18일(현지 시각)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역 안에는 ‘넷제로(Net Zero·탄소중립)’ 광고가 즐비했다. / 에든버러=정미하 기자

영국은 전 세계 최초로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법으로 만들었다. 한국·미국·일본 등과 넷제로 목표 시기는 동일하지만 영국이 가장 빨리 움직였다. 그 일환으로 영국 정부는 지난 2021년 8월, ‘수소 전략’(UK Hydrogen Strategy)을 발표했다.

풍력, 태양광 발전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생성 과정에서 화석연료에 비해 탄소 배출량이 적다. 하지만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에너지 생산량이 들쑥날쑥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수소가 보완해 줄 수 있다. 재생에너지의 발전 전력이 수요 전력을 초과할 때 발생한 잉여전력으로 그린 수소를 생산하고 저장하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떨어졌을 때 미리 생산해 저장해 둔 그린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영국 수소 전략의 핵심은 2030년까지 5GW의 저탄소 수소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매년 300만 가구에서 소비하는 천연가스와 맞먹는 양이다. 5GW의 저탄소 수소를 활용하면 2023년부터 2032년까지 10년 동안 7억 그루의 나무가 포집한 양만큼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그래픽=정서희

여기다 영국 정부는 2022년 4월 ‘에너지 안보 전략’(energy security strategy)을 발표하고 저탄소 수소 생산 목표치를 최대 10GW로 두 배 상향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에너지 안보’, ‘에너지 자립’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진 결과다. 최종적으로 영국 정부는 2050년이 되면 넷제로 달성을 위해 에너지 소비의 20~35%를 수소로 채운다는 계획이다.

수소 생산 방식과 관련해서는 그린 수소와 블루 수소를 동시에 추진하는 트윈 트랙(Twin Track) 방식을 택했다. 수소는 생산 방법에 따라 그레이(회색), 블루(청색), 그린(녹색)으로 분류된다. 화석연료로부터 수소를 생산하면 그레이수소, 그레이 수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포집 및 저장하면 블루 수소라고 부른다. 궁극적인 ‘청정 수소’로 불리는 그린 수소는 태양열 또는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의 잉여전력을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해서 얻는다.

영국 정부의 수소 전략은 단순히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전략에 그치지 않는다.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수소 생산부터 저장과 이동, 이용을 독려하면 수소 산업이 일자리 창출 등 영국 전체에 경제적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믿는다.

영국 정부는 2030년까지 수소 경제가 1만2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최대 110억파운드(약 18조1312억원)의 민간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2050년까지 수소 계획이 진행될 경우 최대 10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130억파운드(21조4277억원) 상당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한다.

◇ 강점1. 바람 많은 섬나라, 풍부한 재생에너지…수소 생산 동력

영국 전역에서는 풍력 발전을 위해 세워둔 새하얀 블레이드(날개)를 흔히 접할 수 있다. 지난달 19일, 에든버러에서 기차로 2시간 50분 거리인 워링턴으로 가기 위해 탄 기차 안에선 낮은 언덕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들 너머로 풍력 터빈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에만 10개가 넘는 육상풍력 단지가 기차 철로 옆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지난달 19일(현지 시각), 에든버러에서 기차로 2시간 50분 거리인 워링턴으로 가기 위해 탄 기차 안에선 낮은 언덕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들 너머로 풍력 터빈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 에든버러=정미하 기자

이처럼 영국은 바람이 많이 부는 섬나라라는 이점을 활용해 육상 및 해상 풍력 단지를 건설하기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영국에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원이 풍부하다는 뜻으로, 풍력이나 태양열 같은 신재생에너지의 잉여전력을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하여 그린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힘이 강하다는 뜻이다.

영국에서 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원은 전체 발전량의 약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풍부하다. 영국은 지난 2021년을 기준으로 풍력 및 태양광에서 전체 전력의 24.9%를 얻었다. 수력(1.8%), 기타 재생에너지(12.9%)까지 더하면 신재생에너지가 전체 발전량의 39.6%를 차지한다. 같은 해 한국이 신재생에너지로 얻은 에너지가 전체 발전량의 7.5%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4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그래픽=정서희

애럽 본사에서 만난 나이젤 홈즈 스코틀랜드 수소 및 연료 전지 협회 대표는 “바람, 파도 등을 갖춘 영국의 지리적 특징은 전 세계가 수소 생산에 나선 시기에 엄청난 잠재력을 제공한다”며 “수소를 만들고, 옮기고, 이용하자(Make it, move it, use it)”고 강조했다.

◇ 강점2. 운반과 저장에 적합한 인프라와 지리적 이점

영국 정부는 국내에서 생산한 수소를 운반, 저장할 수 있는 인프라와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영국에는 지구를 7번 돌 수 있는 길이에 해당하는 약 30만km 길이의 천연가스 파이프가 구축돼 있다. 이를 통해 약 2200만 가구 등이 연결돼 있다. 영국 정부는 기존 천연가스 네트워크 중 25%를 용도 변경해 수소 운반에 사용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거스 매킨토시 영국 에너지 안보 및 넷제로부 선임 고문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은 수소 운반에 적당하다”며 “영국에는 어느 도시에 가도 수소를 보낼 수 있는 시설이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영국에는 수소 저장에 적합한 곳으로 평가받는 소금 동굴도 있다. 지난달 19일 에든버러 대학에서 만난 카트리오나 에들만 에든버러 대학교 지구과학대학원 에너지 석학 회원은 “영국 정부는 소금 동굴을 가장 유용한 수소 저장소로 여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왕립학회는 지난달 발표한 ‘대규모 전력 저장’ 보고서에서 “소금 동굴은 지질 구조가 매우 안정적”이라며 “국립 기록 보관소, 박물관의 역사적 기록을 저장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현재 영국에는 7개의 소금 동굴이 에너지 저장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 강점3. 기초 과학·산학 협력에 기반한 수소 기술력

영국은 수소 기술 특허 보유율 세계 상위 10위 국가다. 영국의 수소 기업은 연료 전지, 수소 생산 등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6733만명)의 약 8.3%에 해당하는 약 560만명이 엔지니어링 분야에 종사하면서 관련 기술을 연구·개발한 결과다. 영국 수소 기업 중 66%는 글로벌 시장에 수소 관련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고 있다.

영국의 수전해(水電解·재생에너지를 통해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를 추출하는 것) 업체인 ITM 파워의 제임스 콜린스 기업 업무 책임자가 9월 21일(현지 시각) 셰필드에 위치한 본사에서 자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셰필드=정미하 기자

산학 협력도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수소 관련 기술 향상에 나서고 있다. 영국 중부 셰필드에 위치한 연구기관인 AMRC(The Advanced Manufacturing Research Centre)은 셰필드대학과 미국 보잉사가 2001년 공동으로 설립했다. 이를 반영하듯 AMRC 자체가 셰필드대 캠퍼스에 있고. 보잉, 롤스로이스, 에어버스 등 글로벌 100여 개 기업이 공동으로 AMRC에서 연구 개발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원자로에서 생성되는 열과 전기를 활용해 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원자력 수소 기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셰필드대학 인근에 있는 영국의 수전해(水電解·재생에너지를 통해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를 추출하는 것) 업체인 ITM 파워의 제임스 콜린스 기업 업무 책임자는 9월 21일 셰필드에 위치한 본사를 찾은 조선비즈에 “셰필드는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오랜 전통을 갖고 있어 고도로 숙련된 직원을 찾기가 다른 곳보다 쉽다”며 “셰필드대는 영국에서 가장 많은 공과대학생을 배출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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