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vs 수소차, 과연 제로섬 게임일까? [박영국의 디스]

박영국 2021. 9. 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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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UAM‧로보틱스도 뛰어들었는데..전동화 '투 트랙' 역량 충분
탈원전‧탈탄소에 재생에너지 개발도 한계 ..수소생태계 활성화로 극복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7일 ‘하이드로젠 웨이브(Hydrogen Wave)’ 글로벌 온라인 행사에서 트레일러 드론 모형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이 수소차 사업으로 개발 역량을 분산시키면서 전기차 분야에 뒤쳐질 우려가 있다.”


현대차그룹의 수소 사업 행보와 관련해 종종 나오는 비판적 시각이다. 어차피 대세는 전기차인데 굳이 미래가 불투명한 수소 사업에 힘을 뺄 이유가 있느냐는 식이다.


이 비판이 타당성을 확보하려면 두 가지 근거가 뒷받침돼야 한다. 하나는 ‘개발 역량 분산’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수소산업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분산’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자. 누구든 어느 하나에 집중할수록 더 큰 역량을 발휘하는 건 맞다. 근대 5종 선수가 수영이나 펜싱 단일 종목에서 해당 분야 전문 선수를 이기긴 힘든 것처럼.


하지만 그건 개인의 얘기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2위 기업집단이고, 현대차‧기아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7위의 점유율을 가진 거대한 조직이다. 수소차와 전기차의 투 트랙 전략를 진행한다고 해서 역량이 떨어질 정도는 아니다.


현대차그룹의 미래 구상에는 수소차, 전기차 뿐 아니라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보틱스도 존재한다. 이를 두고 “차나 잘 만들지 비행체나 로봇은 뭐 하러 손을 대느냐”는 지적은 나오지 않는다. 하물며 수소차와 전기차를 동시에 개발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수소차와 전기차가 전혀 동떨어진 기술인 것도 아니다. 수소차는 흔히 ‘수소전기차’로 불린다. 동력원이 다를 뿐 구동 시스템은 전기차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전기모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게 배터리면 배터리 전기차(BEV)고, 수소연료전지면 수소전기차(FCEV)다.


심지어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과 같은 상용 수소차에는 고전압 배터리팩이 장착된다. 연료전지의 전력을 저장하고 출력하며, 제동 시 전력 회수도 담당하는 역할이다. 이를 감안하면 외부에서 전기를 충전하는 번거로움을 내부에 탑재된 연료전지로 완화하는 ‘전기차’로 봐도 무방하다.


수소산업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동의하기 힘들다. 배터리의 성능 개선 속도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상당기간 대형 화물차나 버스 등 상용차에는 에너지 밀도가 높은 수소차의 경쟁력이 전기차보다 월등한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전기 트럭이나 버스는 많은 짐이나 승객을 싣고 달리려면 배터리 용량도 그만큼 커져야 하고, 이에 따라 차량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부피와 무게가 커지면 짐이나 승객을 실을 수 있는 공간과 여력도 줄어든다.


배터리 용량 확대로 제조원가가 올라가는 문제와 충전시간이 늘어나는 문제도 현재의 배터리 기술로는 해결 불가능하다.


8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2021수소모빌리티+쇼' 개막에 앞서 열린 'H2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한 주요기업 총수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수소는 친환경 에너지지만 수소의 생산 과정은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수소산업에 대한 비관적 전망의 근거로 종종 사용된다.


철강이나 정유공장에서 나오는 부생수소 이상의 수요가 발생할 경우 결국 그린수소(전기로 물을 전기분해)가 됐건, 블루수소(천연가스와 이산화탄소 포집설비를 이용해 생산)가 됐건 전기를 사용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수소를 휘발유나 경유와 같은 ‘연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실상은 ‘에너지 전환의 한 과정’으로 보는 게 맞다.


자동차의 동력원 분야를 놓고 본다면, 전기차는 화력‧원자력‧풍력‧태양광 에너지의 전기화에서 배터리 충전을 거쳐 모터를 통해 운동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거친다.


수소차는 그 중간에 전기에너지를 수소로 전환시키는 과정이 하나 추가된다. 물론 과정이 추가될수록 에너지 손실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에너지의 운송 측면에서는 이점을 갖는다.


에너지를 쉽게 운송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이점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이 추진되는데다, 재생에너지로 충분한 전기를 생산할 만한 자연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그렇다.


현 정부의 의도대로 탈원전 스케줄이 진행된다면, 우리나라는 화력발전소를 더 짓거나 각 가정과 공장에서 전기부족 사태를 감수하며 사는 방식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탈탄소 시대에 화력발전소를 무작정 늘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상 생활과 산업을 마비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수소생태계가 구축된다면 또 하나의 선택지가 생긴다.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충분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국가에서 전기를 수소로 전환하고, 그걸 선박으로 들여와 사용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소를 제외한다면 재생에너지 생산국으로 배터리를 여러 개 묶은 거대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싣고 가 충전한 다음 그걸 다시 가져오는, 말도 안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난 8일 출범한 코리아 비즈니스 서밋에는 현대차그룹 뿐 아니라 SK그룹, 포스코그룹, 롯데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두산그룹, 한화그룹, GS그룹, 코오롱그룹, 효성그룹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서밋 참여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수소의 생산, 운송, 유통, 저장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거액의 투자를 진행했거나 계획 중이다. 국내 산업계를 이끌어가는 기업 총수들이 집단으로 이성을 잃은 게 아니라면 미래가 불투명한 사업에 단체로 뛰어들 리 없다.


전기차와 수소차는 둘 중 하나가 모든 것을 가져가고, 다른 하나는 도태되는 제로섬 게임의 상황에 놓여있지 않다. 두 분야에서 모두 성공적인 성과를 내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도 많다. 현대차그룹,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여러 기업들의 도전을 좀 더 희망적인 시각으로 바라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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