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중고차 유감

  • 장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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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02   |  발행일 2021-06-02 제27면   |  수정 2021-06-02 07:04

20년 전쯤이다. 동생이 회사 앞으로 중형승용차를 몰고 와서 키를 건넸다. 국내 D사 제품이었다. 출고된 지 2년 됐지만 새 차나 다름없었다. 가격도 출고가의 절반 이하였다. 기관장들이 애용하는 관용차와 동일 모델이었다. 후륜 구동인 데다 당시 타고 다니던 준중형에 견줘 실내 크기나 승차감에서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운전대를 끝까지 돌리니 덜거덕거렸다. 등속조인트를 비롯한 각종 조향장치 고장이었다. 비가 온 뒤 아침에 차 문을 여니 뒷좌석에 물이 흥건했다. 기가 막혔다. 카센터에 가서 점검을 하니 하부를 잘라낸 뒤 용접한 자국이 보였다. 차량 외부의 물이 이음매 틈새로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주행 중 시동 꺼짐은 다반사였다.

수리 비용은 중고차 구입비 이상 들어갔다. 폐차해야 할 승용차를 되판 것이다. 동생이 사준 차여서 속만 끓였다. 중고차 매매상은 동생의 지인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동생은 그와 인연을 끊었다. 인생살이에서 개인 주치의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을 들라면 중고차 매매 전문가와 카센터 사장이다. 호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로선 중고차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침수됐거나 대파된 차량을 구매해선 곤란하다.

얼마 전 인천에선 중고차를 샀던 6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조사 결과 미등록 중고차 판매업체 직원이 차를 싸게 판다며 속인 뒤 시가 200만원짜리 차량을 무려 700만원에 강매했다고 한다. 온몸에 문신한 판매업체 직원이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협박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이 자주 쓰는 수법은 인터넷에 값싼 미끼 매물을 올린 뒤 이를 보고 찾아온 고객에게 "이미 팔렸다"고 발뺌하고는 다른 차량을 고가로 강매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협박과 폭력을 일삼는 것은 다반사라고 한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가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중고차 매매시장에 진입하려고 했다. 정부에선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 업종’이라며 막고 있다. 중고차 구매 고객을 보호하고 양심적인 중고차 매매상의 업권(業權)도 보장하는 묘수는 없을까.
장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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