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되는 캠리, 맥 못 추는 쏘나타…멸종 위기 맞은 ‘글로벌 세단’

이재덕 기자 2023. 10.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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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대전환 흐름 속 폭스바겐 파사트·혼다 어코드 등 명차들 휘청
쏘나타 8세대 모델 ‘DN8’ 올해 디자인 대폭 바꿨지만 판매 부진 계속
세단 소비자들 독일 고급차로 이동…현대차 “후속 계획 없다” 암운
현대자동차의 대표적 중형세단으로 최근 디자인을 대폭 바꿔 새로 나온 ‘쏘나타 디 엣지’. 현대차 제공

도요타의 세계적 베스트셀링카인 중형 세단 캠리가 올해 말 일본 시장에서 사라진다. 1980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일본에서만 130만대가 팔렸지만 소형차와 미니밴 등에 밀려 단종이 결정됐다. 다만 미국에서 인기는 여전해 해외 판매용 생산은 유지키로 했다. 캠리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세단 1위를 10년 넘게 고수하고 있지만, 도요타 모델 중 미국 판매 1위 자리는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라브4에 내준 지 오래다.

8일 차업계에 따르면, 중산층의 애마로 전 세계적 사랑을 받아온 ‘글로벌 중형 세단 3대장’ 캠리와 폭스바겐 파사트, 혼다 어코드는 전기차로의 전환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는 중이다.

“차를 바꾸고 싶어도 고장이 안 나서 너무 오래 타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불만요인인 캠리다. ‘기술의 혼다’를 표방하며 일본차의 자존심인 어코드는 가변형 밸브 타이밍(VTEC) 엔진 같은 것으로 독일 명차 못잖은 실력을 뽐내왔다. 고속주행 시 실연비가 ℓ당 22~24㎞를 넘나들어 “굳이 하이브리드가 필요 없다”는 평을 듣는 폭스바겐 파사트 또한 아우토반에서 단련된 탄탄한 주행력을 자랑하지만, ‘ID. 시리즈’에 길을 내주고 있다.

국내 대표 격이던 현대자동차 쏘나타도 단종설이 끊이지 않는다. 1985년 출시 이후 현재 8세대(DN8)까지 나온 쏘나타는 2015년 국내 시장에서 10만8438대를 팔았지만 지난해에는 4만8308대 판매로 반토막 났다.

DN8 초기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 불만과 기아 K5 출시가 쏘나타 판매 하락에 영향을 미쳤지만 DN8의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나온 올해 쏘나타 판매량도 8월까지 2만1785대에 그치는 등 판매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택시용인 7세대 LF소나타 LPG가 36.6%나 된다. 같은 기간 K5 판매량도 2만2361대에 그쳤다.

그나마 남아 있던 국내 세단 수요는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독일 프리미엄급 세단으로 이동하고 있다. 일본차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보다 프리미엄이라고 여겨지는 독일 세단으로 옮겨가려는 분위기”라며 “한국 시장에 적극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SUV에 치이고 독일 고급차에 밀리는 중형 세단들은 디자인을 고급화하고 하이브리드(HEV) 모델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혼다코리아는 중형 세단 어코드의 차체 크기를 키우고 주행 성능을 높인 11세대 모델 ‘올 뉴 어코드’를 이달 국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신형 어코드의 길이(전장)는 4971㎜, 휠베이스(앞뒤 바퀴축 사이 거리)는 2830㎜이다. 현대차 대형 세단 그랜저의 5세대 모델(전장 4910㎜, 휠베이스 2845㎜)에 맞먹는 수준이다. 특히 하이브리드 모델에는 새로 개발한 2.0ℓ 직분사 앳킨슨 엔진과 e-CVT를 넣어 가속 성능을 높였다. 혼다는 최근 하이브리드 모델 시장 성장세에 힘입어 어코드 하이브리드 모델의 판매량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형 세단 등 승용차 판매량이 줄어든 자리를 파고든 건 SUV다. 세단의 변화 속도 이상으로 SUV도 달라지고 있다. 2015년 전후로 SUV에도 하이브리드가 탑재된 모델이 늘고 있다. 차체가 크다보니 공기저항이 많아 연비가 많이 들었던 SUV의 약점도 상당 부분 개선됐다. 기존 중형~대형 SUV의 공기저항계수(Cd)는 0.35 내외를 기록했지만, 최근 나온 SUV들은 계수를 0.30 이내로 낮췄다. 신형 싼타페의 공기저항계수는 0.29로, 0.20대 중반 수준의 세단과 큰 차이가 없다. 업계 관계자는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레저 수요가 늘면서 크고 실용적인 SUV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전기차 전환이 전통의 중형 세단들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승용차 연비 기준을 2032년까지 갤런당 58마일(ℓ당 24.6㎞)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연비가 ℓ당 19~20㎞ 수준이다. 내연기관 세단이 아무리 연비가 좋아도 이 수준에 이르는 건 쉽지 않은 편이다. 유럽연합은 2035년부터 합성연료(e퓨얼) 사용 차량을 제외한 모든 내연기관차의 신규 판매를 중단키로 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유명 세단들은 없어져도 세단 형태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세단이든, SUV든 내연기관 중심으로 쌓아온 모델 명성이 전동화 시대에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BMW와 벤츠는 정반대 길을 택했다. BMW는 내연기관차 일색이었던 5시리즈의 라인업에 전기차 i5를 넣고 디자인도 유사하게 만들었다.

반면 벤츠는 전기차 EQE 시리즈와 내연기관차 E클래스를 분리하고 디자인도 다르게 제작한다.

쏘나타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세단 모델이지만 상징적인 디자인이나 내세울 만한 헤리티지(유산)가 많지 않다. 현대차가 포니 헤리티지를 이어받은 차로 내세우는 건 쏘나타가 아닌 아이오닉 5다.

포니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1970년대 영국 로터스사의 ‘에스프리’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007’에도 나왔던 이 차량 디자인에 영감을 받아 등장한 신차는 테슬라의 사이버트럭이다. 테슬라 모델 S 디자인의 참고가 된 건 벤츠의 S클래스다. 내연기관 시대 유명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이어받은 차량이 역사가 짧은 새 전기차라는 건 아이러니다.

전통적 내연기관의 중형 세단 모델들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현대차 관계자는 “쏘나타 후속 모델 계획은 아직 없다”면서도 “전동화 흐름에 따라 쏘나타 전기차가 나올 수도, 단종이 결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쏘나타는 최신 모델에도 새 엔진을 얹지 못했다.

중형세단을 좋아하는 정모씨(42)는 “아무리 전기차 시대로 간다지만 주유의 편리함에다 내연차 특유의 엔진음과 배기음, 적당한 진동이 주는 감성은 아직 작별을 고하기 이르다”며 “적어도 10년 가까이 더 지켜본 뒤 전기차로 갈아탈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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